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루이나 린데나우 왕조 제3대 국왕
게오르크 3세
Georg Ⅲ
출생
1738년 6월 4일
루이나 연합왕국 벨포르 헤이든 하우스
사망
1820년 1월 29일 (향년 81세)[1]
재위기간
1760년 10월 25일 ~ 1820년 1월 29일
재임기간
1751년 3월 20일 ~ 1760년 10월 25일
린데나우 선제후 (게오르크 7세)
1760년 10월 25일 ~ 1820년 1월 29일[2]
1760년 10월 25일 ~ 1820년 1월 29일
인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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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문
이름
게오르크 빌헬름 폰 린데나우
(Georg Wilhelm von Lindenau)
별칭
농부왕 (the Farmer King)[3]
루이나에서 태어난 첫 왕[4]
아버지
어머니
배우자
자녀
즉위 경위
조부 게오르크 2세의 사망[7]
재위 중 주요 사건
7년 전쟁 종전 (1763)[8]
1783년 강화 조약 (식민지 상실)
섭정
1788년 ~ 1789년 (일시)
1811년 ~ 1820년
왕태자 게오르크[9]
대관식
1761년 9월 22일
벨포르 벨포르 대성당
능묘
벨포르 대성당 왕실 묘소
종교

1. 개요

1. 개요 [편집]

[1] 재위 59년 7개월로 루이나 역대 최장 재위 기록이다. 다만 마지막 9년은 섭정 체제였다.[2] 1806년 대륙 정세 변동으로 선제후국이 소멸한 뒤에는 명목상의 칭호로만 남았다.[3] 농업 개량에 몰두하여 왕실 영지에서 직접 작물 시험을 했고, 익명으로 농업 잡지에 기고하기도 했다. 검소한 생활과 함께 그를 친근한 군주로 만든 요소였다.[4] 린데나우 왕조에서 루이나어를 모국어로 쓴 첫 군주이기도 하다. 그는 즉위 연설에서 자신이 이 나라에서 태어나 자랐음을 강조했다.[5] 57년간 해로했으며 국왕에게 정부(情婦)가 없었다는 점은 당대에도 이례적으로 여겨졌다.[6] 15명 가운데 13명이 성년에 이르렀다.[7] 부왕 프리드리히가 1751년 먼저 사망하여 왕위가 손자에게 넘어갔다.[8] 승전으로 벵골과 북아메리카에서 지배권을 크게 넓혀 제국의 전성기를 열었다.[9] 반복되던 발작이 1811년 이후 회복되지 않아 왕태자가 섭정왕으로 국정을 대행했다. 국왕은 말년을 윈드미어 궁에서 시력과 청력을 잃은 채 보냈다.